【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과학기술의 발전은 종종 연구실 속에서만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혁신은 연구실을 넘어, 시민이 살아가는 생활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바로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새로운 방식 출현이다.
리빙랩은 실제 생활현장에서 시민, 기업, 학계, 정부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실험하는 열린 혁신의 플랫폼이다. 1990년대 말 MIT에서 주거공간을 활용한 실험으로 시작되어, 2006년 유럽 리빙랩 네트워크(ENoLL) 출범 이후 도시, 환경, 보건,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산되었다.
리빙랩의 핵심은 사용자 중심성과 공동창조다. 전문가가 기술을 개발하고 당사자는 그저 수혜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간다. 이는 특히 장애영역에서 주관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당사자의 주관적 욕구나 사회참여 의지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빙랩은 장애인의 주관성을 제도에 끌어들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시도가 있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1인 체험홈 프로그램, 자폐성 장애 학생과 가족의 여가활동 프로그램, 스마트홈 기반 복지기술 실험 등이 리빙랩 방식을 통해 설계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단순한 서비스 수혜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동반자로 자리했다.
해외의 움직임은 더 다양하다. 스위스의 Living Lab for Special Needs는 장애와 관련된 기술과 서비스를 공동창조하기 위해 과학자, 기업, 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영국의 Open and Remote Access Living Lab은 코로나19 시기에 원격 환경을 기반으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생활지원 기술을 실험했다.
미국의 MIT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각국 장애인과 NGO, 학생이 함께 보조기기를 공동 설계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리빙랩이 운영되어 자립생활과 돌봄 부담 완화를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스마트홈 자동화 인터페이스를 장애인이 직접 사용해보고 평가하는 실험도 진행되었다.
이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장애인은 더 이상 정책과 기술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하며 결과를 평가하는 동등한 주체로 참여한다. 이는 “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구호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구체적 방식이다.
물론 리빙랩에도 한계는 있다. 규모가 작고, 시범적 성격에 머무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성과 지속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빙랩이 제기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장애인의 주관성이 반영될 때, 정책은 더 정당해지고, 기술은 더 실용적이며, 사회는 더 포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영역에서의 ‘리빙랩’ 접근방식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첫째, 제도적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개별 연구나 프로젝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상시적인 장애인 리빙랩 플랫폼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지속성 있는 재정 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리빙랩은 단기간의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피드백과 개선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예산 편성과 민·관 협력 모델이 필수적이다.
셋째, 대표성과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특정 장애 유형이나 일부 집단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애인과 가족, 활동지원사, 지역사회의 참여를 보장해 균형 잡힌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장애영역의 리빙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그것은 제도의 경직된 틀을 넘어, 당사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귀중한 시도다. 리빙랩이 장애인의 주관성을 제도와 기술 속에 뿌리내릴 때, 우리는 단순한 서비스 개선을 넘어 권리 기반 사회로 나아가는 희망의 길을 열 수 있다.
장애영역의 리빙랩은 더 포용적인 사회, 그리고 더 인간다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시도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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