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디다 칼럼니스트】 "시각장애가 있는데, 필라테스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센터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더 적극적으로 열어야 하고, 강사와의 소통 방식이 조금 달라질 뿐입니다. 오히려 필라테스는 시각보다 촉각과 청각, 그리고 내 몸의 작은 신호에 집중하는 운동이라서 시각장애인에게도 잘 맞습니다.
1. 공간 구조 먼저 익히기
첫걸음은 ‘공간을 익히는 것’입니다. 기구가 어디에 있고, 매트가 어느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벽과 천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감각으로 익혀야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지요.
어느 날 한 회원님은 처음 리포머 앞에 앉으셨을 때, 손끝으로 기구의 테두리를 따라 천천히 훑으며 “아, 이렇게 길게 뻗어 있군요” 하고 웃으셨습니다. 그 순간 긴장이 풀리더니, 이후에는 혼자서도 자리와 기구를 척척 찾아가셨습니다. 작은 익숙함이 큰 자신감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 촉각·청각 중심의 안내
시각장애인에게 수업은 눈으로 보는 대신, 손끝과 귀로 배우는 시간입니다. 강사가 어깨를 살짝 잡아주거나 골반을 부드럽게 터치하면 몸이 금세 올바른 정렬을 기억합니다. 설명할 때도 “팔 들어요”보다는 “어깨에서 손끝까지 길게 뻗는 느낌”이라고 말하면 훨씬 와 닿습니다.
한 회원님은 어깨를 살짝 잡아드렸을 때, “아, 이 느낌이군요!” 하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그 표정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되었지요. 서로의 감각이 닿는 순간, 수업 공간이 따뜻해집니다.
3. 동작의 ‘모양’보다 ‘감각’에 집중하기
거울에 비친 모양보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부가 단단해지는 느낌, 골반이 바닥과 수평을 이루는 느낌, 호흡이 옆구리로 퍼져나가는 느낌. 이런 감각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몸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어떤 회원님은 “거울을 못 봐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아요”라고 하셨습니다.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배운다는 건, 자기 몸을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4. 강사와의 사전 소통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솔직한 소통입니다. “앞은 보이지만 옆은 잘 안 보여요”, “기구 이동할 때 팔을 잡아주시면 좋아요” 같은 요청이 있으면 수업은 훨씬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한 회원님은 수업 전 “기구 옮길 때만 잡아주세요”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약속 하나 덕분에 불필요한 긴장이 사라졌습니다. 서로가 예측 가능한 관계가 되었을 때, 신뢰가 쌓이고 운동이 즐거워집니다.
5. 혼자 연습할 때의 작은 팁
집에서 연습할 때는 벽이나 매트를 기준 삼으면 좋습니다. 벽을 등지고 앉아 척추 세우기, 매트 중앙에서 호흡하기, 다리 들어올리기 같은 간단한 동작도 충분합니다.
한 회원님은 집에서 벽을 기준으로 호흡 연습을 꾸준히 하셨는데, 다시 센터에 오셨을 때는 자세가 훨씬 안정되어 계셨습니다. “집에서도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더군요.
마치며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눈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몸으로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공간은 더 친근해지고, 감각은 더 섬세해지며, 몸과 마음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갑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그 순간 이미, 필라테스는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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